리처드 플로리다의 <신창조 계급> 관련서적

리처드 플로리다, 이길태역, (2011) 2002 신창조 계급 The Rise of the Creative Class, 북콘서트




























출처: http://www.yes24.com/24/goods/6110012

창조 계급은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 중, 특히 창조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과학자와 엔지니어, 프로그래머, 교수, 시인, 소설가, 예술가, 연예인, 배우, 디자이너, 건축가, 작가, 편집자, 문화계 종사자, 연구원, 분석가, 논평가 등 ‘순수 창조의 핵’이라 불리는 사람들과, 관리 경영 회계직, 법률직, 금융직, 전문의 및 보건의료직, 하이테크 업종 등 광범위한 지식집약형 산업에 종사하는 ‘창조적 전문가’들을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분류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창조적 계급에 속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의 일에서 창조성을 발휘하여 경제적 이윤을 창출하고 있다면 그들 또한 창조적 계급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또한 이 책은 창조성을 경제적 원동력으로 하는 창조 계급이 어떻게 자신의 일과 여가, 공동체를 변화시켜 가고 있는지에 대해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들이 만들어 가는 현대사회의 구조적ㆍ문화적 변화를 다양한 사례로 설명하고 있는 저자의 통찰력이 놀랍다. 미래엔 어떤 사람들, 어떤 도시들, 어떤 국가들이 살아남을지, 이 책은 우리시대 지도자들에게 명쾌한 답을 제시한다.

Richard Florida 세계 경제의 경쟁력을 선도하는 대중지식인으로서 인구변화 동향과 문화 및 기술혁신을 이끄는 주요 인물 중 한 명이다. 국제 외교가, 정부 지도자, 영화제작자, 경제개발기구와 포춘 100대 기업 등은 그가 문제를 해결하고 전략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포괄적인 접근방식을 통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리처드 플로리다는 글로벌 트렌드, 경제학, 번영, 경쟁력과 성장이란 주제에 관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찾는 연설가이다. 치밀한 분석과 앞서 가는 트렌드, 흥미로운 개인사에 더해 유머 감각까지 갖춘 그를 '에스콰이어(Esquire)'는 빌 클린턴, 제프리 삭스와 함께 ‘최고의 지성인’으로 뽑았다. 플로리다가 만들어낸 ‘창조계급’과 지역개발 개념은 BMW와 애플의 메인 광고 캠페인에 차용되었으며 전 세계적으로 지역, 국가 간의 경영, 경제판도를 바꾸고 있다.
또한, 그는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창조적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들(The Rise of the Creative Class)》의 저자이며, 그가 저술한 《후즈유어시티(Who’s Your City?)》는 내셔널 베스트셀러, 인터내셔널 베스트셀러이자 아마존 이 달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창조적 계급의 질주(The Flight of the Creative Class)》와 《도시와 창조계급(Cities and the Creative Class)》도 집필하였다. 그는 《돌파구에 대한 환상(Breakthrough Illusion)》과 《대량생산을 넘어(Beyond Mass Production)》를 통해서 창조력이 어떻게 세계 경제를 개혁하는지에 관한 파격적인 관점을 제시했다.
리처드 플로리다는 '월간 애틀랜틱'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고 '글로브앤드메일'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그 외에도 '뉴욕타임스''월스트리트저널''워싱턴포스트''보스턴글로브''이코노미스트''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글을 기고하기도 하였다. 또한 MSNBC, CNN, BBC, NPR, CBS 등 다수 프로그램에 전문가로 출현하고 있다. 그는 마틴번영연구소 소장이자 토론토대 로트만 경영대학원에서 경영과 창의성을 가르친다.

* 지식중심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리처드 플로리다만큼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거의 없다.
_ 로버트 D. 야로, 뉴욕지역계획협회 회장
* 플로리다의 연구는 진실을 추구하는 많은 분야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_ '살롱닷컴(salon.com)'
* 정말 뛰어난 재능과 비전을 지닌 미래지도 전문가.
_ '패스트컴퍼니'
* 새롭게 부상하는 창조적 계급의 가치관과 욕구, 그리고 인적자본과 창조정신의 핵심을 이처럼 간결하게 잘 설명하는 사람을 나는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_ 존 실리 브라운, PARC(팔로알토연구센터) 전임 소장

이와 같은 평을 받고 있다.

목차
추천의 글
책을 내며

1장_일상생활의 변화
두 명의 시간여행자 / 변화를 이끄는 힘 / 새로운 계급의 등장 / 일상생활의 변화 /
미래 낙관론과 과거 미화론

1부 창조 시대(The Creative Age)

2장_창조 사조
창조성은 무엇인가 / 신화와 오해 / 다양한 특징들 / 궁극적인 원천 /
창조성과 공장 / 창조성 대 조직

3장_창조 경제
창조 경제는 무엇인가 / 창조 경제와 제도 / 경제사로 본 창조성

4장_창조 계급
새로운 경제 계급의 등장 / 창조 계급은 누구인가 / 창조 계급의 규모 /
창조 계급이 추구하는 가치 / 창조 계급과 탈궁핍 효과

2부 일(Work)

5장_기계 공장과 미용실
어떻게 직업을 선택하는가 / 돈이 전부는 아니다 / 미국인의 보수 조사 /
직업 선택의 조건 / 공장이 미용실을 닮아가야 하는 이유

6장_수평적 노동시장
어느 직장인의 경력 쌓기 / 거대한 수평 이동 / 또 다른 논쟁들 /
직장을 옮기는 이유 / 수평적 노동시장의 특징

7장_칼라 없는 직장
작업 공간은 어떻게 바뀌는가 / 자유로운 복장들 / 유연한 일정과 시간 관리 /
개방적인 작업 공간 / 새로운 혜택들

8장_시간 왜곡
왜 우리는 시간에 쫓기는가 / 과로하는 현대인 / 창조 계급의 노동 시간 /
시간 기근 / 유연함과 혼재 / 일 먼저, 삶은 나중에 / 삶의 변화 / 시간 깊이 쓰기

3부 삶과 여가(Life and Leisure)

9장_경험적 삶
닷컴가이의 가상생활 / 창조성과 경험 / 적극적인 삶 / 외모에 대한 관심 /
능률적인 여가 활용 / 거리 문화의 헤게모니 / 경험적 세계의 오류

10장_대규모의 변화
대변화와 문화전쟁 / 거대한 분열 / 비판받는 보헤미안 / 보보스의 등장 /
보헤미안의 흡수 / 샌프란시스코만의 신화 / 괴짜들과 대중문화 / 새로운 주류

4부 공동체(Community)

11장_지역의 힘
우리는 어디에 살 것인가 / 지리적 종말론의 한계 / 인간자본과 경제 성장 /
창조성과 지역

12장_기술, 인재, 관용 : 경제 발전의 3T
창조자본론의 부상 / 기술과 인재 / 멜팅폿(용광로) 지수 / 게이 지수 /
생활양식 수준 / 보헤미안 지수 / 복합다양성 지수 / 창조, 혁신, 경제 성장 /
지프의 법칙 풀기

13장_사회자본에서 창조자본으로
왜 사회자본은 점점 감소하는가 / 사회자본의 딜레마 / 인간자본과 창조자본 /
강한 유대와 약한 유대 / 새로운 분열

14장_창조 공동체 건설하기
어떻게 창조 공동체를 건설할 것인가 / 실리콘밸리를 넘어 / 도시로의 회귀 /
창조 중심지로서 대학 / 인간적 풍토 조성 / 창조 도시 : 몇 가지 사례 /
왜 과거에 얽매이는가

15장_창조 계급이여! 성장하라
창조 계급, 무엇을 해야 하나 / 창조성에 투자하기 / 계급 분열 극복하기 /
사회적 결집 강화하기 / 어떤 목적을 위한 창조성인가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designboom] Smartgeometry 2012 New Media Art

출처: http://www.designboom.com/weblog/cat/10/view/20502/smartgeometry-2012-manta-acoustically-responsive-sculpture.html

smartgeometry 2012: manta - acoustically responsive sculpture


'manta' by guillermo bernal, zackery belanger, eric ameres, and seth edwards as part of smartgeometry, 2012
all images © michael villardi


designers guillermo bernal, zackery belanger, eric ameres, and seth edwards have sent designboom their project 'manta', an acoustically reactive
suspended sculpture developed as part of smartgeometry 2012 a four-day workshop and symposium in troy, new york, USA.
the interdisciplinary project is a dynamic manifestation displaying the incorporation of architecture, fabrication, interactive technology
and research in acoustics into an actualized form. 'manta' is formed from a system of CNC machined panels and connectors comprised
of high-density polyethylene while it's shape results from bending stiffness and triangulation. the hanging piece makes use of its rigging,
infrastructure and home in an acoustically inert environment in order to become a truly kinetic sculptural work.



the sculpture slowly moves due to the influence of the individual standing just underneath its frame


bernal tells designboom that the aim, 'was to create a surface that changes its form - and therefore acoustic character - in response to multi-modal input
including sound, stereoscopic vision, multi-touch, and brainwaves
'. the sculpture was then built in experimental media and performing arts center's studio 1
at rensselaer due to the room being an acoustically inert space. this allowed for the designers to perceive the movement of the reactive surface in reality.
belanger notes, 'manta is a surface that changes form - and therefore acoustic character - in response to multimodal input through open sound control,
including stereoscopic vision, multi-touch, sound, and brainwaves. while adaptable acoustic treatments are common, manta explores variability and
responsiveness in the surface itself, advancing acoustic systems beyond individual elements and corrective treatment.
'

the piece was developed with the support of grimshaw architects, experimental media and performing arts center and rensselaer polytechnic institute.
smartgeometry cluster participants olia fomina, frederico fialho, daniel hambleton, christoffer marsvik, ana garcia puyol, varvara toulkeridou,
ben schneiderman, sarah goldfarb, and james wisniewski also assisted in the construction of the installation.



the group of smartgeometry 2012 troy experiences 'manta'



participants stand under the kinetic sculpture



side perspective of the piece




detailed view of 'manta's' moving arms



the participants install the kinetic sculpture



the participants of smart geometry 2012 troy put 'manta' together at the ground level



a conceptual rendering of 'manta' accurately displays the distribution of the sculpture's weight lowered from the ceiling's surface




a detailed perspective picturing the piece's supportive backbone structure




from the side, this conceptual sketch is able to portray the movement of 'manta's' arms



the designers conceptualize a view of the kinetic work from the ground, looking up to its underside




'the raising and tuning of manta' by zackery belanger
'manta' reactive acoustic surface is raised in EMPAC studio 1 at rensselaer as part of smartgeometry 2012 - design by zackery belanger, eric ameres, seth edwards, and guillermo bernal
music by peter edwards




'manta: first tests' by zackery belanger
the video pictures the first tests of the manta reactive acoustic surface, including assembly footage


[Aliceon] 혼성공간의 탐험과 기록_박병래 New Media Art




박병래 작가는 비디오와 사진 매체를 통해서 과거 시간대의 특정한 사건, 장소에 대한 추적과 기록을 진행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작가 스스로의 혹은 세대의 무의식을 이미지화하여 표현해낸다. 이렇게 표현된 그 시기의 흔적은 재구성되어 현재의 공간, 현재의 자아와 맡닿아 이는 독특한 혼재공간으로 드러난다.



aliceon 뵙게되어 반갑습니다. 우선 네 번째 개인전을 축하드립니다.^^ 독자분들을 위해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박병래입니다. 지금은 비디오를 기반으로 미디어 아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학부에서는 회화를 전공했고요. 학부 졸업 후 독일로 건너가면서 비디오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당시, 2000년대 초반의 유럽은 비디오 작업의 열기가 차 있던 때였습니다. 유학갈 때만 해도 비디오라는 장르에 대해 알지 못하는 상태였어요. 저에겐 새로운 문화였죠. 그러다보니 비디오를 어떤 식으로 보여주고 즐기고 있는지에 대해 생소했지만 그렇게 무에서부터 흡수하다보니 굉장히 재미있게 비디오라는 존재를 빨아들이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2008년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번 전시는 독일에서의 활동을 포함해서 4번째 개인전입니다.




aliceon 회화 전공을 하시다가 비디오 작업을 시작하시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첫번째 근본적 이유는 아무래도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 있다고 해야겠죠. 대학을 위해 학원에서 오랜 기간 그림을 그리고, 입시를 통과해 학교에 들어가도 페인팅으로 시작해 페인팅이 지속되는 과정이 저에게는 별로 흥미롭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공부를 하고 싶어서 작품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독일 학교에 어플라이를 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들이 제 작업을 보시고는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작품 활동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학교에서 더 배울 것은 없는 것 같다'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 때가 제가 다른 매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시점이었어요.
한국의 대학 시스템을 살펴보면, 스스로 작가로서 생존할 수 있는 방법과는 동떨어진 면이 큽니다. 내가 이수해야 할 학점에 쫓겨 정작 전공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들이 펼쳐져있죠. 그러다보니 막상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뭘 해야할지 모르는 상황이 옵니다. 그런 상황에서 '비디오'라는 매체를 접했죠. 원래 사진찍기를 좋아해서 사진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을 했었어요. 사진끼리의 충돌 혹은 사진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등 포트폴리오 몇 권을 만들어 독일로 간 거였죠. 그런 상황에서 교수님들의 말씀을 접하고, 주위를 돌아보니 펼쳐져 있는 비디오라는 새로운 환경. 교수님들의 비디오라는 조언을 듣고 유럽에 있는 언더그라운드 필름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기존까지 보아오던 매체들과는 다른 서사구조 혹은 이미지의 진행 이런 것들이 매력적이었어요. 회화는 작품을 대할 때 관객들이 스스로가 관객인 것을 알잖아요. 동떨어져 보는 것과 달리 비디오는 관객들이 적극적인 개입을 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제가 작업을 하는데 있어서도 충실하게 되고 작가 스스로 작품에 대해 책임감도 더해지고... 그런 점들이 매력적이어서 시작했고 지금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aliceon 비디오라는 매체에 대해 ‘적극적 개입’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비디오 아트가 회화 등의 다른 작업들보다 ‘적극적인 개입’이 가능하다 라는 표현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관객의 입장에서 회화 등의 전통적 매체는 고정된 관람자의 태도를 가지죠. 작품을 대면할 때 스스로를 관람객의 위치로 규정합니다. ‘저 너머는 작가의 세계다’ 라고 인정하죠. 반면에 비디오는 우리가 집에만 들어가도 경험하는 수도 없이 많은 영상이미지들을 보며 익숙해진 구조와 방식이다보니 익숙한 만큼 빨리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자신 안에서 변형을 한다는 거죠. 작품으로라기보다 이야기가 있는 구조에 빠져드는 선체험을 한다는 것이 다릅니다.




aliceon 회화에 비해 좀 더 자위적 해석이나 자유로이 재구성하면서 일방향적으로 받아들인다기보다는 재구성과 해석을 동시에 해낸다는 말씀이신지요.


네 그렇죠.




aliceon 바로 옆 보안여관에서 개인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4번째 개인전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개인전은 작년 8-9월 우연히 군산에 내려가게 된 것이 계기입니다. 군산에서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그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한가지 테마가 있었는데 인문학자들과 연계를 해서 도시를 들어다보는 프로그램이었어요. 사실 저는 군산에 대한 연고도 없고 처음 가 본 도시였어요. 그런데 자료를 찾으며 알게 된 군산이 가진 역사적 레이어들이 매력적이었어요. 과거 일제치하시기에는 개항을 한 도시로서 번영하던 지역이었고 해방 이후에 시대가 흐르고 남한사회가 불균형적으로 발전하면서 소외된 곳이 되었죠. 그러다보니 공간에 시대가 흘러간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어요. 그런 것을 보면서 바로 제 기존 작업을 떠올렸습니다. 제 기억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내가 자라온 7-80년대에 내가 경험해온 기억들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그 곳에서 비슷한 시기에 한 지역사회의 기억들이 보였어요. 사실 당시 레지던시때에는 1층에 걸린 사진 하나밖에 못했어요. 그 공간에 쌓인 레이어. 계속 이 단초로 생각을 하다가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째보 선착장이라는 장소였어요. 그 장소의 이름을 듣자마자 생각났던 것은 ‘왜 지명에 사람에게 불리는 이름이 붙어있을까’ 라는 의문이였죠. 째보하면 익히 알듯 뭔가 흉터가 있는 사람에게 붙여지는 이름인데. (째보 : 언청이를 놀림조로 부르는 말. 언청이는 입술갈림증이 있어 윗입술이 세로로 찢어진 사람을 낮잡아 부르는 말이다.) 째보 선착장이라는 이름이 대체 어디서 왔을까. 그래서 리서치를 했죠. 위치는 금강과 만나는 지점인데 째진 형태로 생겨서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다고 해요.




박병래_Zeboriskie Point_3채널 비디오와 사진, 00:10:00_2011

aliceon 전시 작품들을 보면 우주복 차림을 한 째보가 지구-정확히 말하면 군산-를 탐험하는데 마치 우리의 지구가 외계처럼 보였습니다. 외계인 째보가 사람인 것처럼 관계가 역전된 듯 느꼈습니다.


처음 작업 이미지를 잡을 때 째보라는 캐릭터를 만들고 군산의 미묘한 공간들에서 제가 떠올렸던 건 SF같은 느낌이었어요. 이런 요소들을 합쳐서 제가 좋아하는 네러티브를 만든거죠. 낯선 공간에 낯선 이방인 째보가 와서 그 공간을 탐사하는데 배경에 일종의 풍경처럼 여러 가지 요소들이 배치되기를 바랬어요. 그리고 그 풍경은 사실 일상적인 우리의 풍경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역사적인 레이어들이 담겨있는 그런 풍경이 담겼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또한 사람들이 암암리에 영상을 보면서 시각만이 아닌 오감으로 그것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 한 층에 그런 분위기들을 풀어놓은거죠.

이러한 구성과 배치는 이번 제목의 어원하고도 상관이 있습니다. 이번 이야기를 만들며 떠올렸던 것은 이탈리아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지브라스키 포인트(Zabriskie Point, 1970)였어요. 그 영화에서는 미국의 6~70년대 젊은이들이 이상(理想)세계와 현실이 부딪치는 지점들을 그려내고 있어요. 현실이 완전히 자기들의 상상하던 바라던 이상과 동떨어진 모습에 방황하다 데스 밸리(Death Valley)의 지브라스키 포인트에서 자신들이 원했던 현실을 보게 되죠.




aliceon 작가님이 전시글에서 밝히셨듯 일제시대의 은행(슈미모토은행)과 적산가옥, 현대 신자유주의의 결과물 새만금 간척지 등 과거와 현대라는 시간에 우리들의 이상이나 상상과는 관계없이 들어서는 시대적 결과물이 만들어내는 시대적, 인식적 충돌과 연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변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그 안에서 사람들이 자신들이 손에 잡을 수 없는 일그러진(혹은 기이한) 희망들 안에 둘러쌓여 삶이 자신의 삶이 아닌 상태. 그리고 너무나 쉽게 자신의 삶이었던 곳을 포기하는 모습들이 영화에 비춰졌던 모습들과 오버랩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제목을 앞서의 째보와 합성해서 째보리스키 포인트(Zeboriski Point) 라고 칭하고 전체적인 이야기 구성을 했죠. 전시가 진행되는 이 공간도, 보안여관 자체가 담고 있는 역사적인 레이어도 째보의 여행의 뒷켠에 하나의 풍경으로 남겠죠. 그렇게 구성을 했어요.

정리하자면 이 공간은 째보(Zebo)라는 가상의 인물이 수집하고, 탐색하고, 모든 것을 하고 쏙 빠져나간 공간처럼 되기를 바라며 연출을 했습니다. 그의 수집품을 통해서 우리가 자신 주변의 풍경을 볼 수 있게끔.




aliceon 결국 군산이라는 도시는 시대상황 하에서 번영하다가 사람들의 관심, 그것이 문화적이던 경제적이던 그러한 포인트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됨에 따라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의 기억과 풍경들이 그대로 남는 동시에 시간이 쌓이고 변화하며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기묘한 공간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흔적을 째보라는 캐릭터가 수집한 결과물이 이번 개인전인 것이군요.


1층에서 상영되고 있는 인터뷰는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군산-특해 째보선착장 주변-에서 유년기를 보냈던 사람의 인터뷰입니다. 말씀주신 것처럼 군산은 굉장히 일들이 많고 북적댔던 곳인데 지금은 마치 저 2층의 바람소리처럼 물질적으로도 황량하고 정신적으로도 황량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지금 한국의 지역 사회들의 단면임과 동시에 이 작품과 더불어 우리 세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한 것 같아요. 전 지역이나 역사라는 키워드 외에도 이런 우리 세대의 이야기도 하고 싶었어요. 7~80년대 유년기를 보냈던 사람들의 세대. 물질적으로는 여유로움이 있었지만 전 세대와는 다르게 정신적인 상상력이랄까 이상이랄지 이러한 정신적 측면은 상대적으로 가난했던 세대... 항상 뭔가 굵직굵직한 사건들의 뒤켠에 있었던 세대... 뭔가 일어났는데 다른 것을 통해 그걸 보았던 그러한 세대들의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어요.





aliceon 또한 작가님 자신, 외부를 포괄한 의식적인 세계와 더불어 스스로의 무의식에 대해서도 탐구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화자인 째보에 대한 이야기가 안나올 수 없을 것 같아요. 째보는 군산이라는 공간을 탐험하고 수집하는 주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공간과 밀폐된 사람처럼 묘사됩니다. 째보라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외형은 5-60년대 나왔던 SF영화들을 많이 참조했어요. 원래의 대상을 그대로 재현해 내는 것이 아니라 제가 조금 가공을 해서 ‘마치 그것처럼 보이게’ 하는 작업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우주복도 지금의 우주복이 아닌 과거 시대의 우주복같은 느낌을 불러 일으키게 혼합하여 만들었어요. 째보는 낯선 이방인일수도 있지만 자기를 투영한 또 다른 제가 만들어내는 케릭터입니다. 과거의 무의식속의 이미지. 그리고 집단-저희 세대죠-이 만들어낸 무의식의 또다른 형태. 그런 것이 담겨있는 것 같아요.




aliceon 말씀 감사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알려주세요.


특별한 계획은 없어요. 다만 제가 이제 할 일은 바로 책입니다. 군산에 대한 작업은 1년간 진행되었어요. 작년 이맘때 군산에 내려가서 시작했고, 째보라는 테마에 많은 사람들이 협업을 했어요. 째보리스키 포인트라는 글자의 디자인부터 시작해서 공간을 구성할 때, 오프닝 퍼포먼스, 촬영스탭들 등 많은 분들이 째보와 함께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가 늘어놓는 이야기를 듣고 함께 만들어 나갔습니다. 이 이야기를 매개로 해서 순수하게 자기가 할 수 있는 상상력을 넓힌 거에요. 배경과 상황이 이러니 이런 것들을 그냥 한 작가의 개인전으로 끝내기에는 아까웠어요. 그래서 하반기에는 각자의 상상의 키워드랄지, 여러가지 오갔던 교감들을 모으고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한 책을 만들고 싶어요. 그냥 앞에서부터 읽히는 그러한 책이 아니고 조금은 비 서사적이고 그 책을 보면서 또 다른 째보를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책. 그래서 하반기에는 출판과 관련된 일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작업도요.^^




aliceon 많은 분들과 협업을 하셨는데 그 과정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기본적으로는 우연한 계기에 만난 사람들인데 마침 만나서 교감하고 생각하는 지점들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각자 다른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었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돈이 있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프로젝트를 펼쳐놓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요청을 했고 저도 그가 해야 하는 것들 중에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도움을 주는 방식이었습니다. 단순히 도움과 도움의 교감이 아니에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그들을 보며 새로운 상상력들을 만들어 나갈 수 있었어요. 그리고 실제적으로 그들이 했던 질문들, 이미지들을 통해서 저도 저의 이야기들이 조금 더 단단한 네러티브와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바로 단순히 만났다 흩어지는 콜레보레이션이 아닌 교감을 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시작했을 때 사람들에게 했던 이야기는 한가지였어요. 건강한 협업을 해볼까. 도대체 건강함이란 뭘까. 그런 것들에 대한 질문부터 시작했어요. 그리고 교감이 진행되었고 지금도 그 가치에 대한 부채를 갚고 있는 과정입니다. (웃음) 그들과 함께 책을 만들며 정말 째보의 여정이 이랬고 이랬겠다, 이럴 것이다 라는 결론을 내리고 싶어요.



aliceon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좋은 작업 기대하겠습니다. 물론 책도요.^^





[designflux] 건축 Fernando Romero 디지털문화콘텐츠

2011.09.02 
Fernando Romero
페르난도 로메로
tag건축 


소우마야 뮤지엄 모형을 든 페르난도 로메오(Fernando Romeo)
portrait © designboom

1971년 멕시코시티 출생. 멕시코시티의 이베로아메리카나 대학(Universidad Iberoamericana)에서 건축을 수학한 뒤, 1995년 졸업하였다. 1997년부터 2000년까지 로테르담의 OMA에서 렘 콜하스와 함께 근무하며, 특히 공모전 수상작인 포르투갈 포르투의 카사 다 무지카(Casa da Musica, 1999) 콘서트홀의 프로젝트 리더로 활약하였다. 

2000년 멕시코로 돌아가 자신의 건축사무소 LAR (Laboratory of Architecture)를 창립하였으며, 2011년 건축사무소의 이름을 FREE(Fernando Romero EnterprisE)로 바꾸었다. 바우하우스상 수상의 '빌라 S(Villa S, 2005)', 미국등록건축가협회 상(SARA prize) 수상의  '익스타파 하우스(Ixtapa House, 2005)', 레드닷 어워드 최우수상 수상의 '다리 찻집(Bridging Teahouse, 2006)', 2009년 멕시코건축가협회가 수여하는 젊은 건축가상 수상 등 FREE의 건축 작업은 여러 차례의 수상으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 

뉴욕 컬럼비아 대학의 초빙 교수로도 활동한 페르난도 로메오는 현재 미국건축가협회(AIA) 및 멕시코건축가협회(CAMSAM)의 회원이다. 지금까지 <트랜스레이션 Translation> <하이퍼보더 Hyperborder> <심플렉시티 Simplexity> 등 자신의 건축관을 반영한 몇 권의 저서를 선보이기도 하였다. 현재 FREE의 사무소가 있는 멕시코시티와 뉴욕을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 중인 그는 개인과 기관 간의 합작 및 공조 작업을 꾀하는 한편,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현한 프로젝트를 통해 사람들의 주거 공간과 환경의 증진에 힘쓰고 있다.   

www.fr-ee.org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언제입니까? 
운동을 막 마친 한낮의 시간이죠. 백지 한 장을 앞에 놓고, 그 날 하루 집중해야 할 일들에 대해 계획을 세웁니다.

주로 어떤 음악을 즐겨 들으시나요? 
노랫말이 있는 음악은 좋아하지 않는 편이에요. 그런 음악을 들으면서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으니까요. 요즘 즐겨 듣는 건 일렉트로닉입니다. 작업에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되죠.

라디오도 들으십니까? 
아니요, 들은 지 한참 됐습니다. 특히 이제는 줄줄이 광고가 나오는 라디오 같은 건 듣지 않아도 새로운 것들을 얼마든지 접할 수 있는 시대이니까요.


2010 상하이 엑스포 멕시코관, 2009 
image courtesy of FREE / Fernando Romero


'라 디페렌시아(La Diferencia)', 주택 단지 콘셉트, 멕시코시티, 2011 
image courtesy of FREE / Fernando Romero

새로운 뉴스 같은 것은 어디서 들으십니까? 
멕시코에 있을 때는 아침에 국내 신문 하나를 대강 훑어봅니다. 그런 다음 그날 하루 동안 컴퓨터나 제 휴대폰을 통해 새로 올라오는 뉴스들을 확인하곤 하죠.

머리맡에 두고 보는 책은 어떤 것인가요? 
얼마 전부터 버니 에클레스턴(Bernie Ecclestone)의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제게는 그의 이야기가 매우 흥미롭더군요. 자기만의 비전이 있는 사람 같아요.

디자인이나 건축 혹은 패션 잡지를 읽어 보시나요? 
읽지 않습니다. 일장일단이 있겠죠. 90년대 유럽에 살던 시절에는 그런 잡지들의 기사에 집착하다시피 했었어요. 그러다가 멕시코로 돌아온 뒤, 새로운 환경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그런 잡지들을 멀리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유행을 좇지 않고 다른 이들의 작업에 대해 너무 신경을 쓰지 않기 위한 의식적인 결정이었죠.   


'다리 찻집(Bridging Teahouse)', 진화 건축공원, 중국, 2004 (2007년 완공) 
photo by Iwan Baan courtesy of FREE / Fernando Romero


'다리 찻집', 진화 건축공원, 중국, 2004 (2007년 완공) 
photo by Iwan Baan courtesy of FREE / Fernando Romero


'다리 찻집', 진화 건축공원, 중국, 2004 (2007년 완공) 
photo by Iwan Baan courtesy of FREE / Fernando Romero

여성들의 패션에 관심이 있으실 것 같은데, 특히 선호하는 스타일이 있다면요? 
아예 눈에 띄지 않는 옷이거나 아니면 명품이라 할 만한 옷이어야겠죠. 눈에 띄지 않는 옷을 입으면, 그 여성 자체가 이목을 끄는 명품이 되는 것이고, 명품을 입는다면 옷과 사람 모두 명품이 되는 셈이니까요.

특별히 피하는 옷차림이 있으신가요?    
편한 캐주얼 차림이나 평상복은 절대 입지 않습니다. 그런 옷을 입으면 몸이야 편하지만, 마음이 유쾌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억지로라도 격식을 차린 옷을 입는데, 그래야 기분도 더 좋더라고요.

애완 동물을 기르시나요? 
애완 동물이 있긴 한데, 제가 기른다기보다는 저희 아이들이 기르고 있죠.


'톨루카 하우스(Toluca House)', 톨루카, 멕시코, 2010
photo by Adam Wiseman courtesy of FREE / Fernando Romero


'톨루카 하우스', 톨루카, 멕시코, 2010
photo by Adam Wiseman courtesy of FREE / Fernando Romero


'톨루카 하우스', 톨루카, 멕시코, 2010
photo by Adam Wiseman courtesy of FREE / Fernando Romero

어릴 적부터 건축가 되는 게 꿈이었나요? 
아니요, 원래는 발명가가 되고 싶었어요. 그러다 작가가 되고 싶어서, 문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죠. 대학 전공도 문학을 지원했지만, 통과를 못해서 그때부터 건축에 빠지게 됐습니다. 학교에 다닐 때는 건축이 나에게 맞는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후 네덜란드에 살면서, 건축이야말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죠.

작업은 주로 어디서 하시나요? 
어디에서나 할 수 있죠… 제게 있어 가장 중요한 사항은 제 상상력을 자극하고 반응을 유발할 만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연상 작용을 일으키는 그런 소재를 앞에 두고, 그에 반응하는 식이죠. 저희 팀원들과의 작업을 특히 좋아하는 이유 역시, 누구와 함께하느냐에 따라 반응 방식 또한 달라지기 때문이지요.

이제까지의 작업 중 특히 만족스러웠던 프로젝트는 무엇입니까? 
늘 차기작이죠.


'아이들의 방(Children's Room)', 멕시코시티, 멕시코, 2005
photo courtesy of FREE / Fernando Romero


'아이들의 방', 멕시코시티, 멕시코, 2005
photo courtesy of FREE / Fernando Romero

당신의 스타일을 어떤 말로 묘사할 수 있을까요? 친한 친구가 설명한다면 어떻게 표현할지요. 
하나의 지속적인 형식을 구축하는 데 관심도 없고, 우리만의 스타일로 접근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보다는 프로젝트마다 주어진 환경에 정직하고자 노력할 뿐이죠. 건축이란 번역의 과정입니다. 파나마의 뮤지엄 작업을 할 경우, 거기엔 특정 구조로 번역해야 할 그 장소만의 특징들이 존재합니다. 해당 뮤지엄의 프로그램, 그곳의 문화와 맥락, 가능한 기술을 특정 환경 안에서 활용하는 방식 등이 있는 것이죠.

외부의 디자이너나 건축가들과 작업에 대한 논의를 하시나요? 
네, 그렇긴 하지만 제 친구들 중엔 건축가가 없습니다. 예술 방면이나 저와는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친구들인데, 기꺼이 그들의 경험에서 많은 걸 배우고 있죠. 소우마야 뮤지엄에 대해 가장 정확한 비평을 해준 친구 역시 미술가였습니다. 최종안을 설계하는 데 그 친구의 시각이 기초가 되었죠. 지난 10년간 매우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어 온 친구입니다.


'소우마야 뮤지엄(Soumaya Museum)', 멕시코시티, 멕시코, 2008 (2011년 완공)
photo courtesy of FREE / Fernando Romero
<디자인붐> 관련 기사 보기


'소우마야 뮤지엄', 멕시코시티, 멕시코, 2008 (2011년 완공)
image courtesy designboom

꼭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으신가요? 
올림픽이나 월드컵 경기장 같은 대형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더욱 도전적인 과제를 해보고 싶습니다. 경제적 계층에서 말단에 위치한 사람들에게 보다 혁신적인 주택 솔루션을 제공하는 작업 같은 것이죠. 단지 주택의 개선뿐 아니라, 교육이나 의료 시설 같은 중요한 서비스 역시 제공하는 작업이요. 특히 남미 지역에는 아직 개선해야 할 여지들이 많이 있으니까요.

과거의 디자이너나 건축가 중 특별히 높게 평가하는 이가 있다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꼽을만한 인물들을 저도 높게 평가하죠.

그렇다면 현재 활동 중인 동시대 인물 중에는 어떻습니까? 
제가 가장 동경하는 사람들은 현재 이 사회의 모습을 만들어가고 있는 이들입니다. 지금 현재로서는 주로 테크놀로지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개개인들이라고 할 수 있죠. 우리의 현실을 변화시키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니까요. 물론 예술이나 디자인, 건축계 인사들이 해나가고 있는 작업들도 인정하긴 하지만, 훗날 돌이켜봤을 때 그들이 어떤 영향을 미친 것인지 얘기하긴 힘들 것 같습니다.


'뮤지엄 다리(Museum Bridge)', 미국 텍사스주 엘패소(El Paso)와 멕시코 치와와주 시우다드 후아레스(Ciudad Juarez)를 잇는 다리, 2001-2006
image courtesy of FREE / Fernando Romero


'빌라 S(Villa S)', 멕시코시티, 멕시코, 2005
image courtesy of FREE / Fernando Romero

당신의 작업은 어떻게 변화해가고 있다 할 수 있을까요?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같은 새로운 테크놀로지들이 환경에 대한 우리의 사고 방식에 점점 많은 영향을 미쳐 왔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도구들을 적용하는 최상의 방법에 대해서는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아요. 책임감 있게 사용해야 하고, 건축물이 들어설 환경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늦추어서도 안 된다고 봅니다.

젊은 후학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자신의 욕망의 강도가 그것의 실현 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절대 이 점을 잊지 마세요. 또한 직관을 믿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마세요. 누구나 자기만의 길이 있으며, 거기에 지름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름길을 밟는 사람들이 있는 듯 보이겠지만,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 시간을 갖고 자신을 훈련시켜서, 늘 아이디어를 만들어 가세요. 그래야 필요할 때 최상의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으니까요.

미래에 관해 근심하는 바는 무엇인지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찌 장담할 수 있겠어요. 전 앞날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저만의 회의와 불안감을 갖고 있고, 그런 문제들을 달래는 법을 배우며 살아가고 있다고 봐요. 저 같은 경우, 난독증이라는 문제가 있는 것처럼요.


'익스타파 하우스(Ixtapa House)', 익스타파, 멕시코, 2005
photo courtesy of FREE / Fernando Romero


'익스타파 하우스', 익스타파, 멕시코, 2005
photo courtesy of FREE / Fernando Romero


'2백주년 기념 뫼비우스의 띠(Bicentennial Moebius Ring)', 멕시코시티, 멕시코, 2009
image courtesy of FREE / Fernando Romero


'메르세데스 본사(Mercedes Headquarters)', 아르메니아, 2010
image courtesy of FREE / Fernando Romero

 


ⓒdesignboom.com, All rights reserved
translated from designboom.com


[aliceon] Artificial Nature New Media Art

artificial nature webpage


http://www.aliceon.net/



작가 지하루는 동료 그라함 웨이크필드(Graham Wakefield)와 함께 인공 생명 아트, 특히 인공 생태계(Artificial Nature)에 집중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본 인터뷰에서는 여전히 낯선 인공생명(Arfificial Life)와 인공생명 아트(Artificial Life Art)에 대한 개념 접근에서부터 작가 본인의 작업과 현황에 대해 이야기해보았습니다.


1.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h: 안녕하세요. ‘인공생명 세계 만들기’라는 작업을 하는 지하루라고 합니다. 순수예술(조소)을 전공하고 이후 조각, 설치예술, 3D Animation, Game Engine 을 이용한 가상환경 연구를 거쳐 2008년부터 Artificial Nature 라는 생성예술 작품 연작을 발표해 오고 있습니다.
g: I have studied philosophy and later computer music and media arts, and have worked in new media and software development. I have always been fascinated with processes that are open-ended, and with the paradoxical yet creative nature of time.


2. 기술 기반 혹은 기술매개의 창작활동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h: 예술가로서 동시대의 예술을 하고자 하는 솔직한 욕구가 첫 번째 심리적 동기가 되었습니다. 대학교 시절, 기술 매개의 작업 기반은 없었지만, 그 당시 영상매체의 전달력과 표현력, 그리고 삶의 형식에 빠르게 침투하는 기술의 발전 속도와 주변의 적응 속도는 저에게 학교와 미술사 내적 텍스트 속에 갇힌듯 보이던 현대 예술에 강한 의문을 품게 했었습니다. 
기술 기반 작업을 시작하게 된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한참 이후였습니다. 우선 ‘도구’로서의 컴퓨터 작업에 대한 시도를 하였고, 처음에는 물리적 공간과 재료, 무게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해체적 조각의 가능성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러다가 컴퓨터가 기존의 창작 도구나 여타 기계와 다르다는 것을 곧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몰랐던 개념이었지만 second-order machine 으로서의 컴퓨터의 깊이를 직관적으로 깨닫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이 때가 2000년도 였는데, 문예진흥원에서 제 3회 유연한 손가락의 <동물원에서 길을 잃다> 설치 작업(http://www.mat.ucsb.edu/~jiharu/new/Portfolio/image15.htm)을 하면서, 충분한 훈련과 지식 없이 여섯 대의 비디오 싱크와 3D 앰비언트 공간 사운드 작업을 하고자 했던 의욕과 시도는, 저로 하여금 여러 비용을 지불케 했었습니다. 여기서 얻은 여러 깨달음은, 당시에 진행하고 있던 작품활동의 전면적인 중단과 함께 영상공학과 연구실로 잠적을 선택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기술 매체에 대한 이해가 비교적 명확한 모습을 지니게 되기 까지 십여 년 정도가 걸린 것 같습니다. 

g: As soon as I found out how animation is made, I realized that it could make anything possible. When I learned how a multi-track mixer works, and how a sampler works, I was entirely hooked into computer music. The two are very similar, both being kinds of temporal collage which allow the creation of experiences of imaginary worlds. The first time I discovered video feedback, I realized that imaginary worlds could be constructed by the natural characteristics of technology itself; and with computation that extends to a meta-level. 



3.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미디어 아트란 무엇인가요.

제가 하는 미디어 아트에 관해서는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지만, 일반적인 미디어 아트에 대해서는 얘기를 꺼내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지질 않습니다. 미디어도 아트도 너무나 광범위한 개념이어서 저한테는 미디어 아트라고 하면 마치 세상을 다 뒤집어 싸는 보자기처럼 여겨질 정도입니다. 현재로서는 임시적, 편의적 개념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그러나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작년도 금천예술공장에서의 전시 제목이었던 ‘테크네의 귀환’이라는 개념이 그 설명에 걸맞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제 입장에서는 테크네의 ‘진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요. 근대를 거쳐 예술과 기술, 특히 순수 예술과 응용 예술, 예술과 산업 그리고 과학이 극한적 분화를 거쳐왔습니다. 메타 기계로서 복잡성에 대한 이해와 학제융합적 협업에 기반한 컴퓨터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미디어 아트는, 그러한 분화의 지나치고 어색한 간극을 비판하고 새로운 대중적 창조의 시대를 열어주는 예술 장르로 기능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4. artificial life art 라는 형태의 작업을 하고 계십니다. 독자들에게 이러한 아트에 대해 간단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혹은 generative art 등 유사한 형태의 작업과의 차이점에 대한 설명도 부탁드립니다.

인공생명 예술은 1980년도 후반에 학문 영역으로 정의된 인공생명 과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생물학과 복잡계의 이론에 기반한 인공생명은 ‘가능한 생명(life-as-it-could-be)’ 에 대한 연구 분야로서 우리가 알고 있던 ‘지구 생명-이미 알고 있는 생명- (life-as-we-know-it)’ 의 물질적 발현을 우연적인 것으로 보고 (탄소기반이 아닌 생명이 가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생명의 보편적 특성 또는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요소의 창발을 연구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감각과 정량화를 통한 시뮬레이션과 생물학의 학제융합적 방법론은 이외에도 문화적으로도 의미있는, 인간중심문화에의 비판, 결과를 넘어 과정(process)과 행동(behavior) 강조, 대상중심에서 관계중심으로의 이동 등 여러 새로운 요소들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인공생명 예술은 이러한 인공생명의 연구 목적과 방법론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life-as-it-could-be 는 호주의 인공생명 예술가이며 교육자인 Jon McCormack에 의해 art-as-it-could-be 로 치환되어 인공생명 예술의 의미있는 목표가 되고 있습니다. 
생성 예술은 규칙을 통해 만들어지는 예술로, 일반적인 의미로는 많은 고대 종교 예술이나 장식 예술에서부터 그 예를 찾기 쉬우며, 가까이는 모더니즘 예술가인 Sol Lewitt의 작품도 생성 예술의 예가 됩니다. 인공생명 예술은 엄밀히는 computational generative art 이지만 편의상 generative art로 통용됩니다. 이는 컴퓨터의 내재적 특질인 자동화 알고리즘의 적극적 사용을 통해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요소의 생성이 가능한 예술입니다. 특히 컴퓨터의 도구적 사용을 부정하며 컴퓨테이션은 작업의 컨셉과 구현 모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한편 모든 컴퓨테이셔널 인공생명 예술은 생성 예술에 포함되자만, 모든 생성 예술이 이와같은 인공생명 예술은 아니므로, 인공생명 예술에 비해 생성 예술의 범위가 훨씬 넓다고 할 수 있습니다. 



Artificial Nature: As an Infinite Game, 2008

5. 작가님은 작업을 진행하는데 있어 어떠한 점을 표현하시며, 집중하고 계신지요. 그리고 작업에 대한 세계관을 알려주세요.

h: 제가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변화하는 또는 살아있는 시스템과 그 요소들의 관계입니다. 또한 이러한 인공적인 시스템으로서 작품을 만들 때, 작품이 어떻게 ‘나’로 대변되는 ‘우리’와 의미있는 관계를 맺을 지에 대한 숙고 또한 매번 작업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제 작업에서 작품은 하나의 오브제적 대상이 아닌, 다양한 이야기와 시선과 관계가 얽힌 ‘세계’입니다. 컴퓨터를 이용한 매체 작업을 하기 이전부터 (93년부터)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작품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기존 작품들은 완성도와 상관없이 주관적인 시선이나 사견에서 쉽게 벗어나지지를 않았고, 상징언어로만 존재하며, 현실적 ‘세계’ 와의 거리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것이 불만이었습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오로지 인접한 분야의 작가들만 반응을 보이는 작품에 예술로서의 생명성을 점차 의심하게 되었죠. 이후 Artificial Nature (이후 AN) 와 같은 생성예술 작업을 하게 된 후에는, 다시 말해 세계에 대해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자체를 만드는 과정은, 작업 과정과 결과 양쪽에서 일종의 진전을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전자로 본다면 좀더 충만하게 몰입할 수 있게 되었고, 후자에서는 작품이 보다 긴밀하고 복잡한 층위에서 자신의 자리를 잡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설명이긴 하지만, 감성의 저쪽 편이라 여겨졌던 과학과 수학을 바탕으로 한 이성적 요소와의 화해와 균형에 대한 추구가, ‘세계’에 좀 더 진정하게 접근하는데 도움이 된 것일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변화의 과정 - ‘derailment from your comfort zone (마르코스 노박의 표현을 빌렸습니다.)’ - 이 결코 쉽지 않았었기 때문에 더욱 흥미로운 여정이기도 했습니다. 이 경우 작업을 진행하면서 ‘세상’과 ‘우리’에 대한 지식과 이해와 표현력에서의 작가로서의 성장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 큰 기쁨이 됐구요. 그라함과도 공유하는 제 목표는 스스로 성장하는 열린 ‘세계’로서의 작품을 만들고, 또한 이러한 작품의 존재, 성장, 체험이 관객 개개인으로서의 성장을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자극, 유도해 심리적 물리적 공명을 일으키도록 하는 것입니다. 


6. 인공생명이라는 단어에서도 이미 굉장히 다양한 영역이 드러납니다. 생물, 생명, 알고리즘, 나아가 진화라는 키워드들이 등장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기술, 생물학, 종교, 미학 등등. 이렇게 여러 영역을 넘나드는 것은 미디어 아트의 특성일 텐데요 지금까지 작가님의 작업은 어떠한 영역에서 다루어져 왔는지요. 발표나 학술 세미나, 전시 등등의 모습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 AN 프로젝트를 발표하기 시작한 2008년 이후로, 작품이자 연구 프로젝트로서 AN은 다양한 장소-8 개국- 에서 다양한 형태-설치 작품, 프리젠테이션, 논문, 포스터, 데모 등-로 소개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설치 작품으로서는 아시아 그래프나 씨그래프 같은 그래픽 컨퍼런스의 디지털 갤러리에서 선보이거나, 갤러리나 미술관에서는 주로 미디어 아트, 전자 예술 전시 컨셉으로 초대되었었구요. 올해 소마미술관에서의 전시는 미디어 아트나 전자 예술의 수식어가 없이 젊은 현대 실험 예술로서 선을 보일 수 있어 저희한테는 보다 특별한 의미를 지닌 전시가 되었습니다. 
프리젠테이션 발표는 ISEA같은 컨퍼런스와 학교에서 해왔는데요. 영역으로 본다면, 뉴미디어, 미술, 음악, 건축, 컴퓨터 그래픽스, 게임 등등 다양한 영역에서 발표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관객의 배경 영역에 따라 달라지는 질문들의 차이들은 그 자체로 흥미롭기도하고 저희가 개념을 명확히 하는 과정에 많은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저희가 특히 흥분했었을 때는 2009년 독일 튀빙겐에서 열렸던 진화 연산에 대한 총괄적인 학술제인 에보스타 (EvoStar) 에 참가하게 됐을 때였었습니다. 왜냐하면 진화음악예술 (EMA) 장르를 제안한 Jon McCormack이 진행하는 에보뮤직아트 (EvoMUSART) 워크샵에서 데모와 포스터를 발표하고, McCormack을 비롯해 진화예술학자들과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이 워크샵의 심사위원에는 William Latham, Stephen Todd, Philip Galanter, Juan Romero, Alan Dorin, Peter Bentley, Paul Brown, Gary Greenfield 등등 기존에 작품이나 텍스트로만 알던 분들이 포진해있었고 이들 중에 몇 사람은 저희 논문을 심사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것도 꽤 두근거리는 일이었습니다. 이 곳의 논문 리뷰는 매우 성실했었고 독일에 가서도 정말 충실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McCormack 이 저희의 작품 데모를 보면서 만약 심사위원들이 작품을 직접 봤다면 짧은 논문이 아니라 긴 논문으로 워크샵에 참여할 수 있었 것이라고 한 것도 상당히 용기가 되는 일이었구요. 이 학술제는 인공생명 예술에 가장 특화가 되었던 이벤트라 이후 꼭 다시 참여하고 싶습니다. Springer 사에서 이 학술제의 논문은 매해 모두 출판을 하고 있어서 저희의 논문도 2009년에 출판이 되었습니다. 
이외에도 O'Reilly의 Beautiful Visualization이란 책과 2009년 AlloSphere 관련 TED 프리젠테이션에서도 AN project 가 조금씩 소개가 되었구요. 저희가 있는 산타바바라 주립대학의 AlloSphere 와 TransLab 에서는 다양한 관객을 대상으로 수시로 작품 발표를 해왔습니다. (참고로 AN 프로젝트 웹사이트 http://artificialnature.net 에서 그동안 참여한 이벤트의 리스트를 보실 수 있습니다.)



Artificial Nature: Fluid Space, 2009, SOMA

7. 특별히 영향을 받은 작가 혹은 결과물이 있는지요. 우선은 국내에서 미디어시티 서울을 통해 소개된 바 있는 로랑 미뇨뉴, 크리스타 좀머러가 떠오릅니다. 

h: 한 작가나 작품을 꼽긴 힘들구요. 작업 진행 각 단계에서 많은 다른 작가들에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를테면, 가장 초기에 영향을 받았던 작품은 유기적 조각으로 유전 알고리즘을 이용해 진화하는 형태를 만든 William Latham 의 였구요. 이 작업은 유전 알고리즘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했고 결국 그를 사용해 작업을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70년 대의 2D grid에서 단순한 규칙들을 사용해 흥미로운 동작 패턴을 형성하는 cellular automata 작품인 Conway의 에도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특히 창발이란 개념과 메카니즘을 이해하고 이를 작업에 적용하는데 도움이 되었구요. 과 <유동공간>에 사용한 생명체의 구현은 Boy Surface 란 parametric 수학정의를 변형하여 사용했습니다. 이 수학정의가 폴리곤이나 NURBs 오브젝트보다, 유전형에서 표현형의 발달 과정과 에너지의 흐름을 풍부하게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Sommerer 와 Mignonneau의 작품에서는 작품으로서의 통일성과 직관적인 인터페이스에서 참고할 사항이 있었습니다. 실은 이렇게 보면 정말로 많은 작가와 작품, 알고리즘 등등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저희 작품은 복잡계를 주제와 방법으로 사용하는 복잡계 예술이라 관련 분야가 광범위한데 물론 어떨 때는 이러한 점이 부담이 되고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실은 이런 여러 영향을 다시 한 작품으로 모을 수 있다는 점이 매우 즐겁습니다. 이번의 저희 의 경우 평소 좋아하는 Borges와 M.C 에셔에게 작품 제목과 공간 표현 형식을 빌려왔습니다. 앞으로도 Karl Sims의 의 신경 네트워크 구현이나 Jon McCormack 의 작품에서 ‘강한’ 진화의 구현을 보다 자세히 체크할 예정입니다.


8. 또한 대표적인 인공생명 관련 작업을 진행한 칼 심스나 윌리엄 레이섬 등의 작가가 떠오릅니다. 인공 생명 아트의 흐름과 계보에 대한 간단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작품으로서는 이른 90년대부터 많은 인공생명 예술의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중 갤러리나 미술관 전시 맥락 안에서, 진화 이론에서 세대 간 적자생존의 메커니즘인 ‘자연 선택’ 과 대등한 ‘인공’ 선택 방법 fitness function - 미적 선택 aesthetic selection, 인공적 자연 선택 a-natural selection - 을 기준으로 계보를 살펴보겠습니다. 90년 초반, 작가가 미적 선택의 주체가 되어 유기적 진화조각 프로그램을 구동시키고 그 결과를 프린트해서 전시해온 William Latham 의 시리즈를 찾아볼 수 있구요. 90년 중반, Karl Sims의 는 관객이 미적 선택의 주체가 됩니다. 발밑의 센서를 통해 관객이 관람하는 시간을 측정, 비교해, 가장 많이 주목을 받는 생명체가 다음 세대의 부모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됩니다. 같은 시기, Christa Sommerer 와 Laurent Mignonneau 의 는 관객이 따로 준비된 터치스크린을 통해 생명체의 모양을 그리고, 영상 멀티터치 스크린을 통해 먹이관계나 교배과정 등의 진화 과정 자체에도 개입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90년 대 작업은 일반적으로 작가나 관객의 선택 없이는 다음 세대의 발현이 제한되는 작업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갤러리나 미술관의 맥락을 벗어나면 92년도의 Tom Ray 의 와 같이 컴퓨터 하드웨어 환경 - CPU 계산시간과 컴퓨터 메모리 - 에서 진화하는 예외적인 작품도 있습니다.) 2000년 대에는 Jon McCormack의 이나 저희 의 경우와 같이 인공생명뿐 아닌 인공생태계를 목표로, 인공환경을 포함한 인공생명 예술작업을 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이 경우에도 관객은 인공생태계의 진화에 관여를 하게 되나, 관객이 없을 경우에도 인공생명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인공환경에 적응 - 인공적 자연 선택 - 하며 진화를 계속합니다. 이 경우 인공 생태계와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적응해야 하는 환경으로 작용할 수 있게 됩니다. 



9. 작업을 살펴보면 컨셉 설정 - 알고리즘 등 연구와 코딩 - 구현화 등의 단계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작업의 프로세스는 어떻게 진행되는지요.

h: 컨셉과 구현화 과정은 동시에 추구되며 키워드를 중심으로 마치 building block 같은 모듈로 나눠집니다. 어떻게 보면 십자말 맞추기를 할 때처럼 생태계, 열린 체계, 몰입, 상호작용, 유전 알고리즘 등등의 키워드 각각에서 출발해 한 군데서 풀기 시작해서 막히면 다른 키워드로 옮기고, 또 다른 키워드의 답으로 다른 키워드의 답을 유추하기도 하는 과정을 무수히 반복하게 됩니다. 또한 컨셉과 기술적 구현은 서로 동떨어져 있지 않고, 기술적 구현이 컨셉의 정의와 확장의 필수요소가 되기도 하고, 컨셉이 기술의 방향을 열어주고 명확히 하는 관계를 맺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작업 과정은, 컨셉과 기술 양 측에서 뿌옇고 여린 것이 점차 분명하고 강하게 성장해 나가는 것인데, 너무 추상적인 설명인가요? 
g: We usually start with prototype systems that embody one aspect of a world - perhaps energy exchange with an environment, perhaps a genetic regulatory network - to get to know their characteristics and potentials. Many prototypes may feed into a finished work. However combining these components into an integrated whole is often more complex still. Ultimately our goal is not to create an ad-hoc collage of different processes, but rather to give a genealogical account for how each one emerges from a simpler base.
h: 분명한 것은 최종 작업의 확고한 이미지나 동작 상태를 작업의 초기에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조금씩 쌓아올려지고 부분 부분 요소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다음 수준의 작업 결과가 나오는데, 이를 self-organization의 bottom up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0. 그리고 작업을 진행함에 있어 과학과 아트의 구분은 어떻게 하시나요. 과학적 결과물과 아트웍의 차이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h: 인공생명 예술은 시뮬레이션으로서 과학적 데모, 예술적 작품의 구분이 모호해질 때가 많은데요. 저는 ‘문제’에 대한 접근 태도에 의해 구분합니다. 이를테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것이 목표가 되고 효율성이나 정량화를 추구하는 것은 과학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또 과학으로서의 시뮬레이션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있더라도 무엇에 대한 것인지 지시적 매뉴얼을 필요로 할 때가 많습니다.
예술의 경우에는 위와 다른 입장, 즉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 자체에 대한 숙고에 촛점을 맞추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술로서의 시뮬레이션은 ‘좋은’ 문제에 대해 직관적 감각 언어로 얘기하며 보통 속성상 열린 체계를 지향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한 작품이 예술 또는 문화적인 맥락과 과학 양쪽에 기여할 수도 있습니다. 인공생명 예술작품에 그러한 예가 많은데 Karl Sims의 Evolved Virtual Creatures 는 논문과 작품으로 양 분야에 중요한 기여를 한 좋은 예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g: 인공생명 시뮬레이션을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따라 대략 세 가지 범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경험적 데이타를 대상으로 하는 이론적 ‘모델’을 검증하는 것 - 예를 들어 제안된 수학적 공식 체계가 제대로 박테리아 파지의 발달상황을 모델링 할 수있는 지를 테스트하는 따위 - 을 목표로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시뮬레이션은 모델로 정확히 작용할 때, 그리고 그것이 예측 가능한 모델일 때 그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두 번째는 원하는 목표 - 예를 들어 유전 알고리즘을 이용해 진화한, 더 나은 항공 디자인과 같은 - 를 생성하는 ‘도구’로서의 역할을 하는 시뮬레이션입니다. 시스템은 유용한 생산물을 만들 수 있을 때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세 번째는 가능한 세계의 구현으로서 그 가치를 유용함에 두지 않고 탐험 그 자체에 대한 순전한 매혹, 또는 수학적 아름다움 그 자체 (Conway의 의 예와 같은) 를 추구하는 시뮬레이션이 있습니다. 과학적 또는 유용한 시뮬레이션과는 달리, 예술적 시뮬레이션의 기여에 대한 평가는 객관적인 기준을 갖기가 힘들며, 부분적으로 예술작품 그 자체가 평가기준을 스스로 생산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11. 인터랙티브 아트와 인공생명 아트는 어떻게 구분될 수 있을까요.

상호작용 예술과 인공생명 예술을 비교할 때 두 가지 층위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인공생명 예술은 생성 예술로서 상호작용성이 중요한 특성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작품에서 상호작용의 유무는 작가 혹은 시스템 디자이너가 결정하는 사항이 되지요. 예를 들어 상호작용이 없는 Karl Sims의 의 경우 역시 훌륭한 인공생명 시뮬레이션이며 기준에 따라 훌륭한 예술이기도 합니다. 이외에도 상호작용이 없는 인공생명 예술 작품의 예는 많이 있습니다. 한편 상호작용 예술은 인공생명 예술과 관계없이, 컴퓨터 작업 이전에, 이미 미술사에 등장합니다. 가장 간단한 예로는 해프닝, 퍼포먼스 예술의 예를 들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두 번째 층위를 살펴보겠습니다. 상호작용성의 깊이란 면에서 인공생명 예술은 상호작용의 규칙을 바꿀 수 있음으로 다른 일반적인 상호작용의 작품보다 높은 레벨의 상호작용성을 가능하게 할 수 있습니다. Cornock 과 Edmonds 의 73년 논문을 보면 상호작용을 다이어그램으로 정리한 유용한 설명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기선 통상적인 감상의 대상으로서의 예술 작품과 관객의 관계를 ‘정적 체계’로 정의하고, 여기서 작품만 환경과 시간의 요소에 의해 변해갈 때 ‘동적 수동 체계’로, 여기서 ‘동적 능동적 체계’가 되는 것은 관객에 의해서도 작품이 변할 때 입니다. 이 때 관객은 비로소 ‘참여자’가 됩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관객의 참여가 지속이 될까요? 작품의 반응이 새롭고 의미 있지 않다면 참여의 질과 양은 떨어질 것입니다. 진화 연산은 자극과 반응의 규칙에 새로운 요소를 첨가하고 그 수준을 높여가는 방법으로, 상호작용의 질과 양에서 더 나은 수준의 예술작품을 창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12. 두 분은 오랜 기간 함께 프로젝트 혹은 작업을 진행하고 계십니다. 어떠한 계기로 시작하셨고 협업을 진행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일까요.

h: 제가 유학을 갔던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 주립대학의 Media Arts and Technology과에서 첫 2년 동안 Marcos Novak의 Transvergence 수업에 참여했었는데, 이 수업은 당시 매우 집중도가 높은 수업이었습니다. 세미나와 스튜디오 수업을 합쳐서 짧게는 여덟 시간에서 길게는 열두 시간동안 모든 구성원이 심도있게 토론하고 매주 발표 하는 수업이라 수업 참가자의 관심영역을 깊이 있는 수준까지 서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라함과 저는 2 년 동안 꾸준히 이 수업에서 발표를 해오면서 서로의 작품 방향과 목적이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좀 낭만적인 표현으로는 서로의 작품에 끌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협업은 자연스러운 필요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구체적인 작업 목표와 이유가 같았고, 서로가 자신있게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달랐습니다. 동시에 AlloSphere 나 Transvergence Lab 이 저희를 둘러싼 환경으로서 구체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를 끊임없이 던져줬기 때문에, 큰 혼란 없이 협업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협업을 진행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제가 생각하기엔, 작업 목표와 내용, 이유에 대한 이해의 공유일 것 같습니다. 
우선 협업 자체가 협업의 당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프로젝트의 경우, 간단히 말해 협업이 아니었다면 이러한 작품은 세상에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협업을 성공시키기 위해선, 협업을 하는 구성원이 다른 분야를 전공했다는 것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합니다. The most important thing is to respect what you don't understand… 여러가지 현실적인 제약으로 극히 소수를 빼놓고서 여러 분야를 같은 수준으로 깊게 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관련된 분야의 어휘와 문법, 맥락을 이해하는 것은 다소 시간이 걸리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블랙박스가 있으면 안됩니다. 특히 저에게 낮은 수준 혹은 깊은 수준의 프로그래밍이나 전자 음악 작곡 같은 경우는 한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매우 낯선 영역이었습니다. 저는 가장 어린 학생으로 돌아가 끊임없이 배우려고 했고 지금의 수준으로서는 적어도 지금 무엇을 하고 있고 그게 어떤 수준의 일인지 이해 하고 파라미터를 조정해서 원하는 결과를 만드는 스크립터 정도의 수준이 되었습니다. 이런 노력을 안 할 경우, 블랙박스는 흔히 매직박스로 둔갑을 해서 얼토당토 않은 목표와 현실적이지 않은 스케쥴을 만드는 데 일조하게 됩니다. 어려운 일과 쉬운 일을 구분하지 못하면 협업사이의 자연스런 균형은 깨지고 무리한 기대와 잘못된 평가로 뒤죽박죽이 되어 호흡이 짧은 프로젝트가 되기 쉽습니다. 


13. 가장 애착이 가는 작업이 있다면?

역시 AN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유는 복잡한 레이어와 구조를 오랜 시간 공들여 쌓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요. 그럼에도 열린 시스템으로 여전히 성장 가능성이 많은 어린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14. 향후 계획을 알려 주세요.

우선 이번 여름과 가을에 걸쳐 박사학위를 마칠 계획입니다. 여름에도 전시 계획이 있어 시간 안에 학위를 마칠 수 있을 지 조금 조마조마한 상태입니다. 후로는 AN 프로젝트를 설치작업으로서, 연구 프로젝트로서 진화시킬 수 있는 환경을 찾고자 합니다. 그 곳이 학교였으면 좋겠고, 복잡계 예술, 유기적 생성 조각, 진화 예술에 관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도 기여하고 싶습니다. 기술적으로는 현재는 Just-In-Time (JIT) compilation 사용하여, 개개의 생명체의 유전자를 변수가 아닌 프로그램의 조합으로 정의할 수 있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가설이지만, 이런 방법이 인공생명체의 행동양식과 창발적 구조의 진화를 가능하게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인공자연 작업을 기회가 닿는대로 좀 더 다양한 곳에 설치하고자 합니다. 다양한 생명체가 각자의 살 곳을 찾는 것처럼, 인공 생명체가 살 곳 또한 다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로서는 특정한 설치 조건을 요구하지만, 앞으로 컴퓨터 하드웨어 역시 발전하고 그에 따라 더욱 많은 곳에서 더욱 쉽게 인공 자연과 인공 생명체를 만날 수 있는 상황이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designflux]디자인 리서치 유닛 1942-1972 디지털문화콘텐츠


Design Research Unit: 1942 - 1972 at Tate St Ives
디자인 리서치 유닛: 1942-1972
tag역사 



디자인 리서치 유닛의 공동 설립자 및 회원들, 1948년
photograph: Eric Joysmith, courtesy of Scott Brownrigg

1942년 런던에서 디자인 리서치 유닛(Design Research Unit)이 결성되었다. 건축, 그래픽, 산업 디자인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모인, 영국 최초의 디자인 컨설팅 회사. 광고업자 마커스 브룸웰 Brumwell)과 디자이너 미샤 블랙(Misha Black), 밀너 그레이(Milner Gray)가 설립한 이 회사는, 1970년대 무렵 즈음에는 유럽 최대의 디자인 오피스 중 하나로 자리를 잡는다.

초창기 회사의 운영 책임은 시인이자 예술평론가였던 허버트 리드(Herbert Reed)의 몫이었다. 리드의 글 <예술과 산업 Art and Industry>(1934)과 국제 구성주의 문학(International Constructivism)를 기조로, 디자인 리서치 유닛은 디자이너와 과학자, 공학자들 간에 생산적 관계를 구축하고자 하였다. 그들은 오늘날 당연히 여겨지는 다학제적인 작업 모델을 추구하며, 소재 및 시장에 대한 기술적 연구와 창의적 지성의 결합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양차 대전 사이 예술 담론의 발전, 전후(戰後) 시기의 산업 및 커뮤니케이션 부문의 경향, 그리고 특히 기업 디자인에 대한 수요의 증대 속에서 형성된 것이었다.


디자인 리서치 유닛, 1944년경
photograph: John McCann, courtesy of Scott Brownrigg

전시회 ‘디자인 리서치 유닛: 1942-1972’는 이 그룹의 역사와 산물을 정리하는 최초의 자리였다. 작년 가을 커빗 갤러리(Cubitt)를 시작으로, 올 봄에는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Tate St Ives)에서도 순회전 형식으로 전시가 개최되었다. 전시는 디자인 리서치 유닛의 대표적인 프로젝트들을 집중 조명하며, 사회 전 영역에 우아하고 기능적인 디자인을 도입하려 했던 그들의 야심을 보여준다. 리자인 리서치 유닛의 활동은 3단계로 나뉘어 제시된다. 그룹의 설립 및 창립 멤버, 초창기의 전시 디자인 활동, 영국 산업을 위한 최초의 종합적인 기업 디자인 계획의 시기들이다.


조웻 자동차의 모형, 디자인: 나움 가보
courtesy of Tate Archives

그들의 간학제적 작업 모델은 오늘날의 예상을 가뿐히 뛰어넘는 구석이 있다. 가령 브래드포드 지역의 자동차 회사 조웻(Jowett)의 자동차 차체 및 내부 디자인을 조각가 나움 가보(Naum Gabo)에게 의뢰하기도 했다. 당시 디자인 의뢰 내용을 담은 사업 기록(1943)을 비롯해, ‘디자인 리서치 유닛: 1942-1972’에서 다양한 자료들이 공개되었다. 전시(戰時)에 개최된 영국 정보부 산업디자인 위원회의 ‘영국은 할 수 있다(Britain Can Make It, 1946)’, ‘영국 페스티벌(Festival of Britain, 1951)’과 같은 전시 행사의 모습을 담은 사진 자료들을 비롯해, 양조회사 와트니 만(Watney Mann)의 전통 선술집을, 맥주병에서 실내장식까지 전체적으로 ‘업데이트’했던 실험적 작업의 자료도 전시에 포함되었다. 기업을 위한 CI 작업도 빼놓을 수 없을 터, 영국국영철도(1965), 런던 교통망, 일포드, 화학회사 ICI 등, 디자인 리서치 유닛의 대표적인 CI 디자인들이다. 더불어 리처드 로저스와 수 로저스가 디자인 리서치 유닛에 몸 담았던 당시, 즉 1967년부터 1971년 사이의 건축 작업들도 소개되었다.


디자인 리서치 유닛, 1944년경
photograph: John McCann, courtesy of Scott Brownrigg

영국 최초의 다분야 디자인 회사, 디자인 리서치 유닛은 2004년 8월 건축사무소 스콧 브라운리그(Scott Brownrigg)에 합병되었다.

ⓒ designflux.co.kr




출처 : http://www.designflux.co.kr/other_sub.html?code=258&page=1&board_value=designstory&cate1=



[ZDNet Korea]삼성크롬북 디지털문화콘텐츠


[note]지난노트 다시보기 발표논문


[designflux]김산_디자이너들에게 뭘 원하는가 디자인 / 광고

출처:http://www.designflux.co.kr/first_sub.html?code=3112&page=1&board_value=dailynews&cate1=7

2011.04.11
[김산] 디자이너들에게 뭘 원하는가
tag

 

디자이너들에게 총구를 겨눈 사람들이 적지 않다. 디자이너들은 쓸데없이 장식한다는 이유로 범죄자로 몰리는가 하면, 껍데기만 디자인한다는 혹평도 들었으며, 상업적이라는 비난에서 끝내 윤리적인 책임까지 비화되는 파란만장한 20세기를 지나왔다. 짐작했겠지만, 이러한 지적은 아돌프 로스, 조지 넬슨, 빅터 파파넥, 티보 칼맨 등의 입에서 나왔다. 모두 디자인 현장에 있었던 그들은 당시의 세태에 안타까움 또는 분노를 표출했다. 그러나 그들은 적어도 디자이너의 활동 자체를 폄하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현명한 디자인을 하도록 디자인 주류를 조정하려는 노력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디자인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비난에 나섰다. 유럽 아방가르드들이 시장 개념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미국 기업인들이 뉴바우하우스 지원을 1년 만에 끊었고, 비평가 할 포스터는 렘 콜하스, 브루스 마우와 같은 스타급 디자이너들이 자본의 바다에서 서핑한다는 혹평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돈 노먼의 ‘디자인 사고: 유용한 신화’는 참 막연한 총질이었다. 그가 말하는 디자인이 어디까지를 말하는지, 그가 말하는 ‘디자이너들’이란 도대체 누구를 염두에 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사실 그가 냉소한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직접 로저 마틴이나 팀 브라운에게 따질 일이 아니었을까? 정작 ‘디자인 사고’라는 개념을 잘 아는 디자인 전문회사가 몇이나 되겠는가?

그가 디자인 사고의 신화화를 지적한 것에는 공감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이 부분을 통쾌하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요즘 회자되는 디자인 사고란 디자이너 입장에서 오히려 불만스러운 부분이다. 디자인 사고는 디자이너의 사고방식을 지칭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경영 기법으로 부각된 것이다. 디자인 사고를 소개하는 곳은 디자인 잡지가 아니라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와 같은 잡지들이다. 간간이 디자인학회지의 논문에서나 언급될 뿐 디자이너들이 전략적으로 디자인 사고를 활용하는지는 의문이다. 디자인 회사들이 혹 디자인 사고를 사용한다면 이마도 경영학 연구자들의 책을 공부해서 아는 척 하는 정도일 것이다. 정말로 디자인 사고를 주장했고 그게 먹혀 들었다면 왜 디자인 스튜디오들, 디자이너들이 궁핍하게 살고 있겠는가?

디자인 동네에서 아마 최근에 그를 섭섭하게 대한 모양이다. 해외에서 예전만큼 그를  잘 부르지 않는다거나 IDEO와 같은 컨설팅 회사들의 행보가 탐탁치 않아서 그런 글을 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슬쩍 디자이너들을 약올려 이슈를 만들 생각이 아니라면, 이런 수준 낮은 글을 쓸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디자인 사고: 유용한 신화>는 노먼이 던진 꽤 영리한 포석이다. 곧장 테드 툴리스라는 디자이너가 <디자인은 곧 사고이다>라는 반박글을 올렸으니 말이다. 디자인에 대한 비평과 디자이너라는 집단에 대한 비평은 전혀 다른데, 툴리스의 글은 두 영역의 구분이 불분명해서 노먼이 제기한 문제를 살짝 비껴간다. 하지만 바쁜 중에 자존심을 지키는 정도는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노먼은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글을 읽을 만큼 한가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설사 반박한다고 해도 자신의 권위에 일개 디자이너가 타격을 줄 리 만무하다. 나도 그가 이 글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그가 쓴 글을 반박해서 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생각은 없다. 다만 그에 대한 불만을 표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길 뿐이다.

노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임을 미리 밝혀둔다. 나는 그가 사마란치, 페터 젝과 같은 종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글에서는 그를 디자인 연구의 석학이라고 표현한다거나, 과학고 출신의 똘똘한 친구들에게 디자인을 가르친다는 학교에서 그를 마치 디자인의 그루라도 되는 양 초청하고, 용돈이나 벌려고 쓴 듯한 책을 번역해서 출판하는 꼴을 보면 답답할 노릇이다. 다만, 잡지사는 기사가 필요하고 학교는 실적이 필요했을 것이고 출판사는 검증된 저자의 명성을 활용해서 책을 팔아야 했을 테니 성격 나쁜 한 개인의 불평으로 넘어가면 된다.

실제로 도널드 노먼이 일개 디자이너가 폄하할 정도로 만만한 사람도 아니다. 그의 ‘초기 저작’ 몇 권 중 일부 내용은 분명히 의미가 있었다. 잘 나가는 회사의 부사장까지 지내지 않았는가. 그 때문에 그는 인하우스 디자이너(in-house designer)까지 몰아세우진 않는다. 물론 그가 디자이너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는 오래전 <New Thinking in Design>(국내에는 <혁신적 디자인사고>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이라는 책에서 “수년간 자신들이 무시당하고 있다고 디자이너들이 불편해 하고 있다면, 거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생산 현장의 사람들은 디자이너들이 스케줄을 지연시키고 비용을 높이는 일만 한다고 불평합니다. 저는 그 불평이 옳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디자이너들도 방법을 바꾸어서 실용적이며 매력적인 디자인을 빠른 시간 내에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고 밝힌 바 있다. 아마도 디자인 활동을 해 본적이 없는 비평가들이라면 맞장구를 칠 법한 이야기다. 당연히 디자이너들이 새겨들을 부분이 있다. 하지만 위의 인터뷰에서 노먼이 말하는 ‘디자이너들’은 애플사의 디자이너들이었다. 말하자면 조직 운영에서 디자이너들의 위치와 역할을 말하는 것이지 프로젝트를 수주해서 일해야 하는 디자인 스튜디오나 프리랜서와는 몹시 다른 상황이다.

노먼에게는 인지공학자, 인지심리학자라는 타이틀이 붙는다(공학과 심리학을 전공했으니 뭐라 불리든 틀리진 않을 것이다). 저서 <The Psychology of Everyday Things>(국내에는 ‘디자인과 인간심리’라고 번역되어 있다. 디자인 서적이 아닌데도 디자인이라는 말을 굳이 넣은 이유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더 황당한 일은 <Things that make us smart>는 노먼의 책이 ‘생각 있는 디자인’이라고 번역되었다는 사실이다. 인지공학, 인지심리학을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디자이너들을 훈계하고 싶을까?)에서, 핵심은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이었고, 그 중에서도 ‘어포던스’(affordance)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이 용어야말로 디자이너들이 즐겨 사용하는 것이다. 어쩌면 ‘디자인 사고’의 신화보다는 ‘어포던스’의 신화를 먼저 언급했어야 옳을 것이다.

그는 어포던스가 물건을 올바르게 사용할 ‘강력한 단서’(strong clues)를 제공한다고 설명한다. 책의 첫머리에서는 이것이 요즘 일본의 핵발전소 사건과 함께 자주 언급되는 쓰리마일 핵 발전소 사건의 원인과 결부된다고 설명된다. 한 조작자의 실수로 오작동이 일어났는데 원인은 실수를 유발한 설계상의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오류를 줄이도록 현명하게 설계해야 하겠지만 일반 시민이 지하철에서 버튼을 누르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일이다. 일본의 경우 설계의 문제 보다는, 시공 현장에 전문가가 투입되지 않았고 정계에서 물러난 인사가 책임자로 부임하는 등의 더 문제가 더욱 컸다.

알려진 대로 어포던스는 깁슨(J. J. Gibson)이 1977년에 만들어낸 용어인데, 노먼이 이를 자신의 해석대로 끌어 쓴 것이다. 쥴카 앨름퀴스트와 줄리아 럽튼(Julka Almquist and Julia Lupton)은 노먼의 해석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한 바 있다(<디자인 이슈 Design Issues> Vol.26 2010년 겨울호에 수록된 ‘Affording Meaning: Design-Oriented Research from the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을 참고할 것). 그들은 깁슨이 자연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를 노먼이 인공물의 설계에 무리하게 적용한다고 지적했다. 노먼이 마치 설계자(노먼의 입장에서는 디자이너가 아닌 공학자를 염두에 두었을 테니 이 표현이 나을 것이다)가 마치 컴퓨터에 입력하듯 ‘강력한 단서’를 ‘보편적 언어(universal language)’로 제품에 주입해 두면, 사용자가 그것을 해독해서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프로세스는 결정론적인 디자인을 낳을 수 있고 인간의 사용을 통제할 수 있다는 위험하리만치 유토피아적인 이상에 가두는 것”이라고 그들은 지적했다. 이것은 문화적 다양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깁슨이 넓게 펼쳐진 평지가 ‘걷는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했을 때는 동물이든 인간이든 알아차릴 만 하겠지만, 기계와 제품의 경우 그렇게 정교한 메시지를 누구나 이해한다는 것이 어렵다.

그런데 노먼의 이러한 접근은 디자인에 언어이론으로 적용하려 했던 이들의 해프닝과 몹시 닮아있다. 공교롭게도 그 주역이 <New Thinking in Design>에 노먼과 나란히 소개되었다. 이 책의 첫 장을 장식한 마이클 맥코이(Michael McCoy)는 기호학과 후기 구조주의를 인용하면서 제품 의미론(Product Semantics), 해석적 디자인(Interpretive design)이라 불리는 디자인 방법을 발전시켰다. 한때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그의 이론은 단편적인 의미 부여와 해석 요구, 풍부한 의미 전달의 부재, 해석의 오류 가능성 등으로 비판을 받았다.
 
인지학자로서 명성을 날리고 있는 그가 디자인 분야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디자인 분야가 워낙 다양하고 유연할뿐더러 디자이너, 디자인 연구자, 교육자 등등 역할도 여럿이다. 그러나 그는 비판의 대상을 명확히 디자이너라 지칭했다. 이것은 디자인 활동 자체에 대한 의문 제기이므로 심각해질 수 밖에 없다. 엔지니어의 사고방식과 경영자의 사고방식이 다른 것처럼 디자이너의 사고방식도 다르다. 오죽하면 신제품 낼 때마다 세 부서가 으르렁대며 싸우겠는가? 모두들 요리를 한다고 해도 요리사가 다른 것이고 모두 장사를 한다고 해도 조직을 이끄는 CEO는 다른 것이다.

디자인 사고(thinking)는 내겐 그냥 사고(accident)다. 디자인 회사에 대한 시각을 바꾸기 위해 등장한 말이 아니다. 오히려 경영자들을 위한 새로운 경영전략일 뿐이다. 노먼의 글을 읽으면서, 정치인들이 공공디자인을 이야기할 때와 같은 모멸감을 느낀다. 수십억짜리 디자인 행사에서 정치인들이 순시하는 동안 참여 디자이너들이 밖에서 대기해야 하고, 또 (국내) 디자이너에게 싼값에 일을 맡기려 들고, 정작 그들이 ‘디자인’이라는 수식어를 앞세워 저지른 개발 사업의 비난을 디자인 동네가 떠안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면서 왜들 디자이너들을 훈계하려 드는가? 공공성도 모자라서 디자인 윤리까지 들먹이면서 디자이너에게 짐을 지우더니 이제는 ‘기부’라는 이름으로 공짜로 디자인하라고까지 하지 않는가?

젊은 디자이너들이 기성세대 디자이너들에게 항변하는 것이라면 박수를 쳐주겠다. 어설픈 디자인 이론으로 부실한 담론을 제시하려는 이들을 향한 젊은 디자인 연구자의 날카로운 지적이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겠다. 디자인 수준이 왜 그 모양이냐고 클라이언트와 소비자가 화를 내는 것에도 고개를 숙일 수 있다. 하지만 디자인이라는 수식어가 들어갔다고 해서 특정한 쟁점을 트집 잡아 디자이너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은, 자격증도 없고 노조도 없는, (게다가 저임금 노동자인) 디자이너들에게 너무 한 것 아닌가?

글. 김산(디자이너)

ⓒ designflux.co.kr


출처:http://www.designflux.co.kr/first_sub.html?code=3112&page=1&board_value=dailynews&cate1=7


[Database of virtual art] Media Art Biennale New Media Art


1 2 3 4 5 6 7 8 9 10 다음